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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일제에 검열 당한 설교집 그대로 펴내 무언의 저항”

“일제에 검열 당한 설교집 그대로 펴내 무언의 저항”




[경찰기독신문 정연수 기자종교계 저명사 강연집의 영인본 표지강연집에 실린 미감리중앙교회 김창준 목사의 설교 최대의 모범’ 첫 장을 보면 일본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점선으로 표시해 놓았다.

 

 

종교계 저명사 강연집’ 연구 발표


1922년 7월 활문사에서 출간한 종교계 저명사(著名士강연집은 한국교회의 두 번째 설교집이다총 20명의 설교가 실렸는데 그중 7명이 3·1운동 민족대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민족대표 7인의 설교를 담은 강연집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설교 현장서 녹취 후 정리해 실어

 

이 책은 장로교인으로 당시 YMCA가 발행하던 월간지 청년의 편집인이던 한석원 목사가 설교 현장에서 녹취한 내용을 정리해 실었다한 해 앞서 발간된 최초의 설교집 백목강연이 기고 받은 원고를 정리한 것이라면 이 설교집은 현장에서 사용된 생생한 구어체 문장이 돋보인다국한문 혼용에 아래 아’ 등 고어체가 등장하고 각종 외국 지명과 인명까지 혼용돼 있다.

 

한국인 최초의 장로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김필수 목사는 서문에서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기독교의 복음전파에 가장 효과적인 설교가 각처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적어 후일에 그것을 필요로 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출판업에 종사하는 한석원이 직접 설교 자리에 참여하여 그 내용을 듣고 기록해 그것을 모아서 책을 냈다.”

 

한 목사는 별도로 주일 아침 예배설교나 오후강설에 열석하지 못한 교우 또는 아직 교역자가 없는 반도의 모든 교회를 위하여 편집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설교자 20명 중 7명이 민족대표

 

강연집에 설교가 수록된 민족대표 중 신석구 이필주 목사신생활 사장 박희도기독신보 주필 박동완은 3·1운동으로 체포됐다가 21년 11월 경성감옥에서 만기 출소한 직후였다이들 외에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개성 남감리교회 북부예배당 정춘수 목사미감리중앙교회(서울 중앙감리교회김창준 목사도 민족대표였다.

 

출감 직후 원산 상리교회에서 목회하던 신석구 목사는 마태복음 16장 16~20, 28장 19~20절을 본문으로 기독교와 사명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신 목사는 오늘 우리 조선에서 이 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백성을 성결케 하기 위하여 힘을 다하려 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적으로 되어야 하겠습니다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교회의 반석으로 산 그리스도를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역설했다기독교 구원이 개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민족과 나라의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선교사들을 통해 전파된 기독교가 3·1운동 등을 겪으면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민족 종교로 자리매김했다는 기독교 역사학자들의 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검열로 삭제된 부분 그대로 실어

 

길선주 목사는 평화의 서(새벽)’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요한복음 14장 27이사야 32장 17시편 85편 10절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다길 목사의 설교 중 반 장 정도가 검열에서 삭제된 채 공란으로 이어진다뒤이어 선포한 말씀에서 길 목사는 평화와 정의가 입을 맞춘다는 그리스도 이전의 시인이 노래한 그 말과 같이 될까혹은 십자가 위에서 평화를 선언하신 그리스도의 생각하신 것과 같이 행하게 될까 보아야 할 것입니다오늘 이후로는 의가 평화와 입을 맞춘다는 말을 기억하여 정의의 기초 위에 서서 싸움할 자가 될 것 같으면 정의의 무대에서 평화의 막이 열리도록 위로부터 손을 펴서 지배하소서 하고 기도할 것입니다라고 전한다길 목사의 설교 외에 김창준 목사의 최대의 모범’, 대영성서공회 이홍주 시찰의 양심의 위력에서도 반 장 정도 분량의 설교 본문이 삭제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부는 변절시대의 아픔으로

 

한경국 장로회신학대 초빙교수는 10일 검열 사실을 그대로 반영해 설교집을 냈다는 것은 무언의 저항 표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한 교수는 76년 8월 한정판으로 출간된 영인본 500권 중 한 권을 접했다이번 학기 장신대 신대원에서 설교의 역사 과목 강의를 준비하다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그는 설교기법 면에서 절기 설교 형태를 보이는 게 특징이라며 총 5편이 절기 설교로 볼 수 있으며 신년 설교가 2성찬·유년 주일·성탄절 설교가 한 편씩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교의 특성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도 여러 면에서 이 책의 의미를 평가했다한 교수는 안타깝게도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저항 정신을 보여줬던 편집자 한석원은 훗날 변절한 것으로 전해진다며 박희도 정춘수 목사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돼 시대의 아픔을 보여준다고 말했다한 교수는 앞으로 21세기 한국교회 강단을 위해 한국교회 초기 예배와 설교자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수 기자 pcnor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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